최근 몇 년간 주요 건설 원자재의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함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하여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 추세가 이어져 온 여파로, 건설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공공공사 도급계약에서는 물가 변동을 이유로 한 공사비 증액이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제19조 및 동법 시행령 제64조는 물가의 변동 등으로 인하여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의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 담당 공무원이 기획재정부령(동법 시행규칙 제74조)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22조는 그 구체적인 방법과 한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간 공사 도급계약의 경우,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에 대한 별도의 계약상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거나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 배제 특약을 두어 사실상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건설공사 계약에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는 이른바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에 대한 국내 대법원 판결이 최근 확정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 법원은 건설계약에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나, 이번 판결은 반대로 그 특약의 유효성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큽니다.
본 뉴스레터에서는 위 대법원 판결을 소개하고, 외국 법제 실무에서 물가 변동을 이유로 한 공사비 증액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대법원 2024.4.4. 선고 2023다313913 판결
지금까지 대법원은 공공계약에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며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무효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하급심 판결들에서도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해왔습니다. 반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원심인 부산고등법원은 민간 공사 계약에 포함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본건 공사계약의 특약사항은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도급금액을 증액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는 반면, 계약서에 첨부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에는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제20조 제1항).
한편, 본건 공사 중에 시공사의 귀책사유 없이 착공이 8개월 이상 연기되는 동안 주요 자재 중 하나인 철근의 가격이 두 배가량 대폭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4는 계약 체결 이후의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계약 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는 경우 해당 건설 도급계약은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것으로 보아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규정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점을 전제로 위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의 취지가 본건 계약서에 첨부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 제20조 제1항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계약의 특약사항 중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 제20조 제1항 및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위반되는 사항은 무효에 해당하므로, 본 계약서 내용 중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을 배제하는 부분 또한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간 법원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공공계약의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은 유효하다고 인정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 공사계약에 포함된 특약의 경우 사적 자치 원칙에 따라 더욱 그 유효성이 인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위 사건의 경우 전체 공사금액이 비교적 소액이라는 점(약 11억 원), 시공자의 시공 경험, 역량이 대기업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 계약서에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이 첨부되어 있었고 법원이 그 부분을 판시에 인용하였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물가 변동을 이유로 한 공사비 증액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합의가 향후 일괄적으로 모두 무효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기존 판례와는 상반된 입장을 취한 판결인 만큼 건설공사 계약에 포함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에 대한 법원의 향후 판단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2. 영국
우리나라 건설업계와 마찬가지로 영국 등 서구 국가들에서도 원자재 등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증가한 비용 부담 문제에 관하여 시공사와 발주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영국 건설업계에서는 별도의 특약사항이 없는 경우 물가 변동으로 인하여 증가된 비용은 시공사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물가 상승 요인에 대비하여 원자재 값 및 인건비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도록 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JCT(Joint Contracts Tribunal), FIDIC(International Federation of Consulting Engineers), NEC4(New Engineering Contract) 등의 표준계약을 활용하는 경우, 물가 상승으로 인한 변동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 조항5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통상 이 선택 조항들은 장기적인 건설 프로젝트에 주로 활용되어왔으나 최근 지속된 물가 상승 추세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단기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에도 이와 같은 물가 변동분 반영에 대한 선택 조항들을 계약조항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건설업계는 위와 같은 표준계약을 활용하는 방법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전례가 없는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계약상 책정된 공사비에 비용 상승분을 반영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활용되는데, 첫 번째는 **(1) 잠정액(provisional sums)** 방식으로, 일부 작업에 대하여 그 소요비용을 계약 체결 시점에 확정하지 못한 경우 잠정적으로 금액을 설정해두되, 이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공사가 금액을 수정하면 발주자가 이를 수용하여 최종 공사비에 반영하거나 또는 해당 작업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의 시공사가 아닌 다른 업체를 고용하여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입니다. 두 번째는 **(2) 물가 변동조항(fluctuation provision)**을 두어 계약 기간 내 원자재 값 및 인건비 등의 변동을 공사비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최근까지는 보통 활용되지 않았으나 시공사 측이 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 원가가산(cost plus)** 및 **목표원가(target cost)** 계약은 실제로 발생한 비용에 일정 비율의 이윤 및 관리비를 더하거나 당사자들이 합의한 목표원가와 실제 비용의 차액을 양측이 나누는 방식으로서, 표준계약의 선택 조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최근 판결 중 건설계약의 공사비에 대한 물가 변동분 반영 문제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일반 상사계약에서의 비용에 대한 물가 변동조항에 대하여 영국 법원은 조항의 문구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price adjustment clauses need to be clear and specific), 모호하게 작성된 조항의 경우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였을 때 공사비에 대한 물가 변동 조항에 대하여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계약 문구가 포함된 경우에 한하여 영국 법원은 공사비 증액 청구를 인용할 가능성이 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3. 아랍에미리트
한국 건설기업들이 다수 진출하여 있는 UAE의 경우에는 공사비에 대한 물가 변동분 반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UAE의 건설업계에서는 영국과 같이 FIDIC 등의 표준계약을 많이 활용하고 있어, 실무적으로는 표준계약 내 선택 조항을 사용함으로써 물가 변동 반영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한편 UAE 민법에서는 예견 불가능한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 경우 법원 등의 재량으로 계약 내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정하여(UAE 민법 제249조) 법원으로 하여금 계약의 형평성을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UAE 법원은 UAE 민법 제249조에 근거하여 당사자들의 합의 내용을 변경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UAE 법원이 코로나-19 내지는 급격한 물가 변동 등 최근의 사태를 UAE 민법 제249조상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해석하여 계약 내용을 적극적으로 조정할지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시공자가 원자재 값의 급격한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청구하였는데, 법원은 물가 상승은 예견 가능한 위험 부담이므로 이를 이유로 UAE 민법 제249조를 원용하여 공사비를 증액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 Abu Dhabi 법원 및 Dubai Courts of Cassation의 판결에서 코로나-19에 따른 lockdown 조치로 인해 자재 조달 등 시공자의 계약상 의무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경우,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UAE 민법 제273조상의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원용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때, UAE 민법 제249조에 따른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규정이 아닌 UAE 민법 제273조상의 불가항력 조항을 원용하는 경우, 계약 내용의 조정이 아닌 계약 전체에 대한 해지 권한만이 인정된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영국, UAE 등 다양한 국가들이 물가 상승을 이유로 한 공사비 증액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나아가, 최근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및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이어진 물가 상승이 공사비 증액에 관한 각국 법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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