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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남형두 변호사, 저작권법, 요격용 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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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언론보도
Published on
2007.03.07
조선일보 2007년3월7일


[시론] 저작권법, 요격용 미사일?

작년 초 ‘표절에 관대한 사회’란 글을 쓴 적이 있다. 고위공직자를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 때 재산증식과정, 병역문제 등을 검증한 뒤로 공직사회가 상당히 맑아졌듯이, 학자 출신을 고위직에 임명할 때는 저술에 대한 표절 검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에 이어 이필상 고려대총장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표절 관련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저작권법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저작권 문제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김병준, 이필상 두 사람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들로 인해 저작권 문화 발전에 있어서 전공자들이 오랫동안 떠들어도 되지 않을 일이 수십년 앞당겨진 셈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느냐에 있다. 매번 사건 이후 표절에 관한 명확한 판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끌어내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듯한 형국이다 보니 저작권법은 일종의 요격용 미사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와 같이 저작권법이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써 활용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죄명이 시국사범의 죄명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면 믿겠는가? 이른바 ‘노가바’사건, 즉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사건’이 그것이다. 서슬 퍼렇던 공안정국을 조성해 왔던 5공 시절, 노동자들과 그들에게 의식화를 주도하였던 한 목사를 실정법으로 의율(擬律)할 수 없었던 공안검찰은, 당시 그들이 의식화 노래로 기존 유행가에서 작사자의 허락없이 임의로 가사만 바꿔 불렀던 점을 들어 저작권법위반죄로 기소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올 뿐이나 당시로서는 저작권법이 또 다른 의미에서 이렇게 무서운 법인가 할 만한 일이었다.

연이은 표절 사건 이후 대학과 문화계는 분야마다 표절기준과 인용법을 만드느라 난리다. 대한민국 문화·지식계는 말 그대로 때 아닌 ‘공사 중’인 것이다. 정부도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할 것 없이 표절기준과 인용법을 만드느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부처가 경쟁적으로 인용기준을 만들다 보면, 현실에 맞지 않는 규범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학계에 맡겼다가는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준 이하로 만들 가능성이 있어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지식산업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고들 한다. 우리 경제는 이제 지적재산을 소중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식산업, 문화산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 점에서 표절을 근절하고 올바른 인용법을 수립하는 것은 당장에 빛나는 일이 아닐지 몰라도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하버드 법대는 남의 글을 인용하는 방법에 관한 책인 Bluebook을 만든 지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18번째 개정증보판을 냈다. 이 작업이 이번으로 끝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페인에는 100여 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도 공사 중인 교회가 있다고 한다. 보이는 건물 못지않게 중요한 보이지 않는 지적재산의 경계를 확정하는 인용기준을 만드는 것은 늦었지만 결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표절시비로 달궈진 현 상황에서 자칫 기관별로 서로 어긋나는 기준을 만들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거나 잘못된 과거 관행을 추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어렵사리 만든 기준이 규범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외면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저작권과가 있는 문화관광부의 주도하에 각 부처의 업무가 조정될 필요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현 정권의 임기 내에 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지적 창작물에 대한 교통질서법에 해당하는 모델 인용기준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현 정부라는 것만으로도 후세에 치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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