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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남형두 변호사, 문화산업 시장 개방과 대응 - 세계 1등 체질로 바꿔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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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Published on
- 2007.05.02
이코노미스트 2007년5월8일
문화산업 시장 개방과 대응 - 세계 1등 체질로 바꿔나가야
8차까지 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끝까지 미(未) 타결점이 많았던 분야는 저작권 분과였다. 지난해 1월 한·미 양국이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기 전날, 우리나라는 미국이 이른바 4대 선결요건으로 제시했던 것 중에서 마지막 요건이었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를 수용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상징하는 문화산업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는 지난 1년여 협상에서 한결같았다. 그만큼 미국은 문화산업의 토대가 되는 저작권 부문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세를 폈고, 우리 측도 그에 못지않게 선방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알려진 대로 FTA는 일괄타결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저작권 분과의 선방이 여타 분과에서 우리 협상력을 증진시킨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저작권 분과가 타 분과의 협상력 증진을 위한 지렛대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다.
문화의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그 법적 보장이 되는 것은 저작권이다. 우리 경제가 문화·지식산업을 경제 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삼는다면, 저작권은 ‘저작권 침해 국가’라는 오명을 쓸 때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을 진작시키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보장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는 차제에 우리의 저작권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먼저 이번에 타결된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됐다. 현행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생존기간과 사후 50년 동안을 보호기간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미국은 저작자가 자연인인 경우 사후 70년, 법인과 같이 자연인이 아닌 경우 발행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 자연인·비자연인을 불문하고 ‘보호기간 70년’에 합의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출판업계 등으로부터 협상 결과에 대해 가장 많이 공격당하는 부분이다. 보호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가액에 대한 예상은 많게는 2000억원대에서 적게는 수억원대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호기간 연장에 따른 경제적 손익 분석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여러 가지 가설과 불확실한 변수들이 전제된 것이다.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가 부족하며, 미국에서조차 이 같은 법경제학적 접근 방식에 많은 회의가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예상 수치를 들어 협상결과를 논의하는 것은 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 가져오는 국내 저작권 산업의 증진 효과, 즉 창작자들의 창작 의욕 고취와 저작권 산업에의 투자 확대는 우리의 국부가 외국에 유출되는 것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기간 연장을 저작권 산업 강화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일시적 저장’을 복제권의 내용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것을 저작권자에 대한 복제권 침해로 규정하게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디지털 저작물의 P2P 방식에 의한 전송 또는 스트리밍 방식에 의한 송신의 경우 컴퓨터에 일시 저장되는 일시적 복제를 복제권 침해로 보지 않았다.
다만 전송권, 공중송신권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저작권자를 보호해 왔으나 일시적 저장을 복제의 한 양태로 인정함으로써 일시적 저장의 복제권 침해 여부에 대한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만큼 저작권자의 지위가 강화된 것이다.
다만 시사 보도·교육·연구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한 공정한 이용의 경우에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하여 이용자 보호를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호주 간에 체결된 FTA에서도 일시적 저장을 복제행위로 규율한 것은 우리와 같다.
셋째, ‘접근통제(Access Control) 기술적 보호조치’를 신설했다. 암호와 아이디가 있어야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는 접근통제 방식에 의한 기술적 보호조치에 대해 이를 우회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에 합의했다.
다만 고의·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으며, 향후 기술 발전에 따라 예외를 추가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이용자 보호 측면을 도모했다.
넷째,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을 강화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OSP’로 불리며 네이버·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는 온라인상 저작권을 침해한 자(네티즌)의 개인 정보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저작권 침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저작권자 보호 조항으로, 이는 미국 측의 요구만이 아니라 그간 우리나라 저작권자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다섯째, 저작권 집행을 강화했다.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로 돼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피해자인 저작권자의 고소가 없으면 단속하거나 이용자를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협상 결과 ‘상업적 규모’의 저작권 침해시 비친고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올해 6월 말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저작권법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상습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에는 친고죄 조항을 폐지했는데, 개정법이 발효되기도 전에 한·미 FTA에 의해 다시 법 개정 사유가 발생했다는 점이 시선을 끈다.
사실 저작권 침해의 친고죄 폐지는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한·미 FTA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때 저작권법을 개정해 친고죄를 먼저 폐지한 것은 우리 측 협상무기를 사전에 버린 것으로 협상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이었다.
미국 측은 무역대표부(USTR)와 의회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해 역할 분담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우리는 협상을 하는 정부와 국회가 서로 엇박자를 냄으로써 입법을 조금만 뒤로 미루었더라면 FTA 협상 중 상대방의 양보를 하나라도 더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여섯째, 병행수입 금지를 수용하지 않았다. 저작권을 보유하거나 기술우위에 있는 국가들은 수출 국가별로 가격을 차등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가격차별 정책을 쓴다. 국가별로 음반·DVD 등 정품 저작물의 가격이 다른데 이때 가격이 낮은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국가로 정품이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이른바 ‘병행수입 금지’다.
미국은 협상 중에 이를 관철하려고 했으나 우리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에 대해 주로 저작물을 수입하는 입장인 우리로서는 저작물 가격 상승에 어느 정도 제동을 가했다는 점에서 잘된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기술(IT)과 지적재산(IP)은 우리나라를 향후 50년간 먹여 살릴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에서 지속적으로 아시아 시장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이 분야 세계 1등인 미국과 경쟁해야 하며, 이는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 상황이 그러하다면 수세적으로 임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이번에 체결된 한·미 FTA를 우리나라 저작권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법무법인 광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