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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남형두 변호사, 문화산업은 저작권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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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Published on
- 2007.05.31
조선일보 2007년5월29일
[시론]문화산업은 저작권을 먹고 자란다
며칠 전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 중 저작권 분야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저작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보호기간이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됨으로써 외국 저작물 사용에 대한 비용부담이 증가하게 되었고, 온라인상의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해 포털업체의 책임을 강화하였으며, P2P 전송방식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일시적 저장’을 복제권의 내용으로 포섭함으로써 불법적인 음악과 영화의 다운로딩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저작권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나 이용자 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논의되는 내용 중 상당수는 과장된 것이거나 한미 FTA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미국 원서 복사해서 못 쓴다”, “짝퉁 DVD 업자 더 괴로워진다” 같은 내용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되긴 했지만 이것들은 기존의 국내 저작권법에 의해서도 이미 금지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굳이 FTA가 아니더라도 우리 내부에 저작권 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저작권을 강화하는 데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십 수년 전 단관 개봉으로도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편제’에 이런 장면이 있다. 한적한 장터에 어린 송화(오정해 분)가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부르고, 한쪽에서는 약장수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약 상자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쌓아 둔다. 소리를 마친 송화는 약병을 들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팔고 다닌다. 송화의 아버지이자 몰락한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은 멀찌감치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이 광경을 보다가 “이깟 소리는 혀서 뭐혀”라고 외치면서 약 상자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쓸어 버리고 이내 판은 깨진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세월은 흘러 영화 속 시대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깟 소리는 해서 뭐하냐고 외쳤던 유봉이가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책임지는 문화부 수장을 지냈으니 변하긴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의 지적 창작물을 재산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이나 공산품처럼 보이는 재산이 아니란 이유로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과 같은 권리를 무체재산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보이는 재산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지식재산권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120억 달러라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디즈니사의 곰돌이 푸 캐릭터의 가치는 무려 170억 달러라고 하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캐릭터 상품 하나가 우리의 대표 기업 브랜드보다 값어치가 더 나간다고 하니 미국이 자국의 저작권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한 법을 ‘미키마우스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만하다. 문화산업의 법적, 제도적 보장은 바로 저작권법의 다른 이름이고 그 기본 전제는 타인의 창작물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 있다.
정보기술(IT)과 지적재산(IP)은 우리나라를 향후 50년간 먹여 살릴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고들 한다. 시장 상황이 그러하다면 수세적으로 임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금번 타결된 한미 FTA를 저작권산업 체질 강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막 EU(유럽연합)와도 FTA 협상을 시작했다. EU에는 향수의 향기도 저작물로 보호하는 프랑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공연 중인 ‘라이언 킹’처럼 다른 나라의 민요와 전승을 가져다가 뮤지컬로 포장하여 큰돈을 벌고 있는 영국, 출판문화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는 독일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우리는 세계시장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약이나 연필 몇 자루 팔기 위해 공짜 소리를 해야 했던 지난 세기처럼 여전히 문화를 덤으로 생각할 것인가?
남형두 연세대 교수(저작권법)·법무법인 광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