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WTO 중심의 다자 통상 체제를 무시하며 무역 상대국별로 차등적 관세를 부과하고, 비관세 장벽 철폐 압박 및 대미 투자·미국산 구매 약속을 관세와 연동시키는 새로운 통상 질서(이른바 ‘턴베리 체제: Turnberry System’)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미 연방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 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임시 조치로 무역법 122조에 따라 10%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무역법 301조라는 더 견고한 토대로 갈아타며 정책 기조를 구조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변화하는 국제 통상 질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바, 이번 이슈 브리프는 턴베리 체제의 실체와 영향, 대응 방안을 정리하였습니다.
1. 통상 질서 재편 배경
국제 통상 질서 재편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서 출발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고율 관세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이를 지렛대로 삼아 주요국과 개별 협상을 추진하였고, 2025년 7월 EU와의 합의를 계기로 그리어 미 무역대표(USTR)가 이를 ‘턴베리 체제’로 명명하였다. 1) 미국은 WTO에 기반한 다자간 통상 체제를 무력화하면서 자신 주도하 양자 합의로 사실상 새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요컨대 미국이 지향하는 질서의 키워드는 상호성·경제 안보·관리 무역으로 집약할 수 있다.
■ 다자 체제 불신: 무조건적 최혜국 대우(MFN)가 각국과의 무역 관계 최적화를 막는다고 주장하면서, WTO의 MFN 원칙 재고와 상호주의에 입각한 폐쇄형 복수국 협정을 추진
■ 무역 적자 축소와 제조업 회귀: 관세를 미국 제조업 진흥과 경쟁력 향상, 나아가 경제 안보 강화의 지렛대이자 상대국의 대미 투자 및 미국산 구매 확대를 이끌어내는 압박 수단으로 활용
■ 대중국 견제: 원산지 강화·환적 차단, 우려국 기술·투자 배제 등을 통해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하려는 노력 강화
2. 통상 질서의 재편: 「턴베리 체제」의 형성과 법적 근거
미국은 EU, 일본, 한국, 인도와의 기본 합의(Framework Agreement)에 더하여,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에콰도르, 대만과 상호 무역 협정(Agreement on Reciprocal Trade, ART) 9건을 빠르게 체결하였다. 2) 이는 단편적이고 독립적인 협정이 아닌 아래 다섯 요소가 결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세에 그치지 않고 대미 투자 압박, 미국산 구매 확대,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 제거 등을 함께 포괄한다.
[표1]「턴베리 체제」의 5대 핵심 요소
| 구조적 요소 |
내용 |
예시 |
| 국가별 차등 관세 |
MFN(비차별) 대신 상대국별 기준 세율 |
한·일·대만·EU 15%,
ASEAN 국가 19%, 중남미 10% |
| 전략 품목 예외 |
반도체·의약품·핵심 광물·항공기 별도 우대 |
행정명령 제14346호 부속서 |
| 비관세 장벽 제거 |
미국 안전·배출 기준 수용, 통관 간소화 |
미국 안전 기준 차량 허용 한도 폐지(한국) |
| 경제 안보·제3국 차단 |
환적 차단, 우려국 기술·투자 배제 |
경제 및 국가 안보 관련 규정(말련·인니 ART) |
| 투자·구매 성과 지표화 |
투자·구매를 관세와 연동 |
한국 3,500억 불, 일본 5,500억 불 대미 투자 |
핵심 작동 원리는 상대국의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합의 전 일방적으로 선언한 고율 관세로 원상 복귀시키는 ‘스냅백(snapback)’ 장치이다. WTO식 사후 분쟁 해결에서 벗어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관세 우대를 즉시 정지하거나 재부과하는 사전적 준수 관리 장치(trigger governance)를 합의에 내장한 것이다. 이로써 관세는 고정된 권리가 아니라 언제든 회수될 수 있는 조건부 혜택이 된다.
[표2] 관세부과 법적 근거의 전환: IEEPA → 무역법 301조(19 U.S.C. §2411(c))
| 시점(2026년) |
사건 |
의미 |
| 2. 20. |
연방대법원 IEEPA 위법 판결 |
'IEEPA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 → 상호 관세 · 펜타닐 관세 무효 (다만, 232조 · 301조 관세는 영향 없음) |
| 2. 24. |
무역법 122조 발동 |
전 국가 일률 10% (법정 상한 15%) · 150일 한시 (7. 24. 만료)
국제수지 목적의 비차별 조치이므로 ‘국가별 차등’ 구조를 대체하기 어려운 임시 교량적 역할 |
| 3. 11~12. |
301조 조사 2건 개시 |
① 구조적 과잉 생산 (16개 경제권, 한 · EU · 일 포함)
② 강제 노동 (60개 경제권). 사실상 대부분의 교역국이 대상 |
| 6. 2~3. |
강제 노동 301조 조치안 발표 |
60개 경제권에 추가 관세 10% 또는 12.5% 제안 (7. 6. 의견 마감, 7. 7. 공청회) |
턴베리 체제의 관세 합의는 본래 IEEPA에 따른 상호 관세 부과 행정명령(EO 14257)을 토대로 설계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로 그 근거가 소멸되자 미국은 USTR의 조사, 조사 대상국과의 협의, 공청회 및 의견 수렴 등 절차를 거쳐 법문에 관세 부과 권한을 명시한 무역법 301조로 법적 근거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과거 트럼프 1기 대중국 301조 관세를 둘러싼 일련의 국내 소송에서도 그 권한이 대체로 유지되어 온 만큼, IEEPA보다 법적으로 견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3). 다만 301조는 미국 입장에서 일방적 조치의 국내법적 근거가 될 수 있으나, 과거 모든 교역국에 보편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없어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다.
한편 IEEPA 관세 무효화 이후에도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기존 ART의 무효를 주장하기보다, 미국이 어떤 국내법적 근거로 정당화하든지 기존 합의 유지 입장을 취함으로써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쪽을 선호하였다. 이는 IEEPA(위법) → 무역법 122조(임시) → 무역법 301조(영구화)로 이어지는 미국 국내법적 근거 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무역 상대국 간 양자 합의의 골격이 유지되는 배경이 된다.
3. 영향과 평가
턴베리 체제는 개별 산업을 넘어 글로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수출 통제 강화, 미·중 갈등의 격화와 협상의 병행, 각국 보호주의의 확산과 기존 통상 협정(예: USMCA)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턴베리 체제는 관세, 비관세 및 투자와 구매를 포괄하고 있는바, 본고에서는 우리 산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관세와 대미 투자 약속에 따른 영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3월 개시된 강제 노동·과잉 생산 301조 조사 결과에 따른 관세의 영향은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한국은 양 조사에 모두 포함되었다. 강제 노동 301조 조사에서는 외국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물품을 수입 금지하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12.5% 관세 부과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과잉 생산 301조 조사에서는 자동차·전자·철강·조선·석유화학 등 주목 부문에 대한 조사 결과가 변수로 될 것이다. 부문별로 유의할 점은 아래와 같다.
■ 반도체
향후 반도체에 232조 관세가 부과될 경우 보장 조건의 비교 기준에 따라 실익이 달라질 수 있다. 일본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 높지 아니한’ 세율(사실상 최혜 보장)을 약속받은 반면, 한국의 기준은 ‘한국 이상의 반도체 무역량을 갖는 경제체’로 한정되어 사실상 대만 정도만 비교 대상이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만 ART 조건을 모니터링하고, 동등하거나 보다 나은 대우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 자동차·전자
한미 합의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부품의 232조 관세가 15%로 인하되었으나 일본·EU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대미 수출 관련 한미 FTA 무관세 우위는 사실상 소멸하였다. 제작사별 미국 안전 기준 준수 차량 수입 한도(5만 대) 폐지까지 더해져 대미 수출과 국내 시장의 경쟁 환경이 함께 바뀌며, 과잉 생산 301조 조사의 주목 부문인 만큼 조사 결과와 조치안의 향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철강·조선·석유화학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32조 관세는 영국을 제외하고 어느 합의에서도 인하되지 아니한 별도 관세선으로 유지된다. 철강·조선·석유화학은 모두 과잉 생산 301조 조사의 주목 부문이므로,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사업 계획을 점검하고 조사 결과와 조치안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편 IEEPA 관세 무효화 이후에도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기존 ART의 무효를 주장하기보다, 미국이 어떤 국내법적 근거로 정당화하든지 기존 합의 유지 입장을 취함으로써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쪽을 선호하였다. 이는 IEEPA(위법) → 무역법 122조(임시) → 무역법 301조(영구화)로 이어지는 미국 국내법적 근거 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무역 상대국 간 양자 합의의 골격이 유지되는 배경이 된다.
■ 동남아 생산 기지
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ART의 우회 차단·제 3국 차단 조항은 현지 법인의 대미 수출에 직접 적용된다. 중국산 투입재 비중이 높은 공급망이라면 원산지 및 환적 관리와 함께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 등 미국 법상 요구되는 강제 노동 관련 증빙을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 대미 투자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 투자 약정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 확보 원칙, 연 200억 달러 한도, 한미 전략 투자 공사 설립 등을 골자로 한 한미 전략 투자법 4)이 최근 발효되었다. 금액·기한·고용 등 투자 핵심 성과 지표(KPI) 미달은 관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발동 근거가 IEEPA에서 301조로 옮겨가는 만큼 관세 재부과 메커니즘의 불확실성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미 투자와 직접 연계된 반도체·조선·배터리 부문은 투자 이행과 관세가 맞물려 있어 영향이 클 수 있다.
4. 향후 전망 및 대응
미국이 주도하는 턴베리 체제는 근본적으로 미·중 간 구조적 및 전략적 갈등을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국제 통상 질서 형성의 구조적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공급망 재편, 수출 통제 강화의 흐름이 심화되는 한편, 비차별 원칙(MFN)에 기반한 다자 질서는 상호성 및 관리 무역 중심의 차등적 질서로 점차 대체될 전망이다. 다른 교역국들도 유사한 양자 레버리지·관리형 합의를 모방할 경우 통상 규범의 파편화와 상호 보복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대응 과제의 중심이 ‘관세율을 얼마나 낮출 것인가’에서 ‘새 질서 안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투자 약속, 공급망 원산지, 규제 정합성 등)로 이동하고 있다.
조만간 도래할 122조 관세의 150일 시한(7월 24일)이 1차 분기점으로, 해당 기한 만료 전후 강제 노동·과잉 생산 301조 조치(관세)가 그 공백을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60개국·제조업 전반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조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301조 관세는 법문에 행정부의 관세 권한이 명시되어 있는 만큼, 행정 절차법(APA)·중대 쟁점 원칙(Major Questions)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국 국내 법정 다툼의 인용 및 집행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또한 WTO 차원에서 분쟁 해결 절차에 회부될 수 있으나, WTO의 집행력도 제한된 상태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단기적 변수가 될 수 있으나, 관세 권한의 상당 부분이 행정부에 위임되어 있고 다자주의에서 지역주의·양자주의로의 이행이 이미 구조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점에 비추어, 턴베리 체제의 기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단기적으로 IEEPA 관세 환급 적격 검토(2025. 4. ~ 2026. 2. 통관 엔트리·납부액 점검) 및 2건의 301조 조사 조치안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 활용을 검토(강제 노동 7. 6. 의견 접수 마감)해야 한다. 또한 상시적으로 ① 품목별 통합 관세표 작성(HTSUS·원산지·232조·301조·122조·ART 예외)과 시나리오별 영향 분석, ② 주요국의 무역·투자 정책 및 입법 변화 모니터링, ③ 대외 무역·투자 시 법률 자문 등을 통한 통상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장기 공급 계약에 관세 변동, 가격 조정, 법령 변경, 불가항력 조항을 정비하고, 관세·비관세 한미 합의 사항 전반에 대한 사내 모니터링 체계 구축과 한미 FTA 권리 보전, 반도체 보장 조항 해석 확보, 강제 노동 수입 금지 제도 정비 등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정보 공유와 협조 체계 구축과 운영이 필요하다.
[이하 각주]
1) ‘턴베리(Turnberry)’는 2025년 7월 미국과 EU가 무역·투자 합의를 타결한 스코틀랜드의 지명이다. 그간 다자주의를 고수해 온 EU가 미국의 압박 속에 양자적 합의를 수용한 상징적 장면으로, 일방주의·보호주의적 경제 압박을 정당화하는 체제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리어 미 무역대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200일이 되던 2025년 8월 New York Times에 게재한 “우리가 세계 질서를 다시 만든 이유(Why We Remade the Global Order)” 제하의 기고문에서 브레튼우즈 체제의 WTO 원칙이 새로운 정치·경제적 현실에 대한 적실성을 상실하였다고 선언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으로 형성된 새로운 체제를 ‘턴베리 체제’라고 불렀다.
2) 한편, 중국과는 2025년 4월 ‘미국 해방의 날’ 이후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촉발된 상호 보복 관세 부과와 상호 간 수출 통제 강화(반도체, 희토류)로 갈등이 고조되었으나 작년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 계기 휴전을 합의하면서 협상을 계속해왔다. 금년 5월 북경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타개하지 못하여 통상 갈등이 잠재된 상황에서 국면을 관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3) 특히 미국이 과잉 생산과 강제 노동을 근거로 301조를 발동하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종래 통상 규범은 최종 제품의 특성을 바꾸지 않는 공정 및 생산 방법(PPM)에 대한 규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으나, 턴베리 체제하에서 미국이 이를 직접 규율함으로써 사실상의 역외 적용을 통해 상대국 정책에 개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 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시행 2026. 6. 18., 법률 제21486호, 2026. 3. 17.,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