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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창희 변호사, 미국식 기소면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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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 Releases
- Published on
- 2006.06.28
헤럴드경제 2006년6월27일
엘리엇 스피처(Eliot Spitzer). ‘월스트리트의 보안관’으로 불리는 뉴욕 주 검찰총장이다. 메릴린치의 거짓 기업분석보고서 사건 , AIG의 분식회계 사건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혐의가 포착되면 그 사건에 파고들어 결국 기소하고 마는 그의 집요함으로 인해 월스트리트의 투명성이 제고됐다. ‘스피처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뉴욕 시 평검사 시절 조직폭력 수사에서 명성을 날렸다. 스캐든 압스 등 월스트리트의 유명 로펌을 거쳐 마흔 살의 나이에 주민 선거를 통해 주 검찰총장이 됐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스피처는 올해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그런 그가 항상 피의자들과 진검승부(眞劍勝負)만을 벌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검사들은 검사와 피의자 간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진검승부’라고 표현하곤 한다. 일본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검사는 피의자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전인격을 걸고 설득과 추궁을 벌이고, 피의자는 이를 방어하는 과정을 나름대로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이루어 온 모든 성과가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검사의 인격적 설득에 감복되거나 논리적 추궁에 압도돼 쉽게 백기를 들 피의자가얼마나 될까. 인권수사가 강조되고 뛰어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검사에게 이를 압도할 검술(劍術)을 익혀 진검승부에서 승리하는 검사(劍士)가 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눈을 돌려보자. 스피처는 미국법상 ‘기소면제(immunity)’ 제도를 적절히 활용했다. 기소면제란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미국법상 제도다. 일단 기소면제를 받은 참고인은 진술을 거부할 수 없다. 진술을 거부할 경우 처벌되기 때문이다. 스피처는 AIG 전 회장 그린버그 사건에서 기소면제를 조건으로 부회장 우만스키의 수사 협조를 얻어냈다. 게다가 뉴욕 주의 경우 다른 주와 달리 증권 사기사건과 관련해 ‘마틴법(Martin Act)’이라는 강력한 절차법이 있어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필요한 자료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입수할 수 있다. 결국 수사의 압박을 받은 AIG 측은 16억4500만달러라는 거금을들여 합의를 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정의(正義)의 이름 아래 검사와 국민을 예측 불가능한 진검승부에 ‘올인(all-in)’토록 할 것인지, 아니면 기소면제나 플리바겐과 같이 실용적인 미국식 신무기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하여도 고민을 시작할 때다. 로스쿨과 배심제가 미국 사법제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법무법인 광장 서창희 변호사(suh@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