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는 '다자주의'에 근거한 '자유무역'보다는 오히려 APEC을 계기로 한 한국, 미국, 중국 등 주요국 간 양자 무역 협상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광장국제통상연구원』은 이번 이슈 브리프를 통해 APEC 정상회의의 배경, 주요 성과 및 시사점을 살펴보았습니다.
I. 배경
2025년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1989년 서울에서 출범한 APEC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며, 무역·투자 자유화와 경제 협력 강화라는 설립 목표를 재확인했다. APEC은 21개 경제체로 구성되어 매년 정상회의를 열지만, 일반 국제기구와는 다르다. 회원을 국가가 아닌 '경제체'(economy)로 부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홍콩과 대만을 독립된 관세 영역으로 인정하되 국가로 보지 않으며, 정상회의는 '경제 지도자 회의(Economic Leaders’ Meeting)'라고 부른다. 의사 결정은 컨센서스에 기반한 비구속적 방식으로, 이른바 '아세안 방식'을 따른다.1)
사실 그동안 APEC의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가치로 인해 합의의 비구속성이라는 한계와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개방적 지역주의가 현실화되려면 평가·관리 체계의 혁신, 회원국 간 책임 분담 및 제도적 결속 강화가 필수적인데, 아직까지는 APEC 회원국 간 이해 관계가 다양하고 통합 수준이 낮아서 장기적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기가 어렵다.2) 결국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도 선언문이 채택되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구속력 있는 권리 및 의무가 규정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APEC을 계기로 한 주요국 간 양자 무역 협상을 통해 각국의 통상 정책이 조율되었다.
II.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선언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경주 선언(‘Gyeongju Declaration’)3)은 아·태 지역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하고, 인공지능(AI) 발전, 인구 구조 변화(고령화·저출생) 및 공급망 재편 등 복합적 도전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문화 창조 산업을 아·태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정하고, 이 분야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였다.4) 나아가 "견고한 무역과 투자가 지역 번영의 핵심"임을 재확인하면서, 회복력 있는 공급망 확보와 시장 주도적 지역 통합(아태 자유 무역 협정(FTAAP) 논의 등)을 강조했다.
다만, 지난 2024년 마추피추 선언(‘Machu Picchu Declaration’)5)을 포함한 이전의 정상회의 선언문에 담겼던 WTO 및 자유 무역 체제 지지 문구가 이번 경주 선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WTO 관련 내용은 장관급 외교 통상 합동 각료 회의(AMM) 공동 성명에만 포함되었다.6) 대신 경주 선언에는 "외교 통상 합동 각료 회의(AMM)의 성과를 향후 협력의 핵심 토대로 높이 평가한다(commend)"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정상 차원에서 합의하지 못한 WTO 관련 사안을 장관급 공동 성명에 반영하고, 그 결과를 "향후 협력의 기초로 삼는다"는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7)
III. 2025 경주 APEC 계기 주요 양자 무역 협상
한국 이재명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 주요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8) 한·일 정상은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첨단 기술·경제 안보·문화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한·캐나다 정상은 인·태 지역에서의 전략적 연계 강화를 위해 '안보·국방 공동 성명'에 합의하고, 에너지, AI, 문화·인적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한·싱가포르 정상은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교역·투자, 첨단 기술, 녹색·디지털 해운 항로, 원전 등 신성장 분야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다. 이외에도 이 대통령은 뉴질랜드, 태국, 베트남, 필리핀, 호주, 칠레, 인도네시아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특히 중국과는 다수의 경제 협력 합의를 이뤘는데, 한-중 정상회담(11월 1일)을 계기로 양국 중앙은행 간 5년 만기 70조 원 규모의 '원-위안 통화 스왑 계약'을 체결하고, 한-중 간 호혜적 협력을 위한 '한중 경제 협력 공동 계획(2026~30)에 관한 MOU' 및 '서비스 무역 교류·협력 강화에 관한 MOU' 등 6개의 MOU를 체결하였다.9)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이후로 지속되어 온 한국과 미국의 무역 협상은 경주 APEC 기간 중 한·미 정상회담(10월 29일)을 통해 크게 진전되었다. 양국은 대미 금융 투자 3,500억 불(현금 투자 2,000억 불 및 조선업 협력 1,500억 불) 지급 방식, 상호 관세 15% 재확인, 자동차 및 부품 관세 15%로 인하 등 한미 관세 협상 세부 사항에 합의하였다.10) 미국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항공·에너지·첨단 기술·조선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와 수출을 확대하고, AI·6G·공급망 협력 강화와 함께 조선·방산·LNG·클라우드 등 전략 산업 전반에서 경제 안보 동맹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11) 양국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논의된 안보 및 관세 관련 합의 사항을 정리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 시트 발표를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12)
경주 APEC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또한 다소 완화되었다. APEC 기간 중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10월 30일)에서 양국은 '쿠알라룸푸르 협정'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미국은 추가 상호 관세(24%) 부과 유예,13) 펜타닐 관련 관세 인하(20%에서 10%로)14), 1년간 입항 수수료 부과 유예, 일부 미국 내 대중 제재 및 조사 유예를 검토하기로 하였다.15) 중국은 희토류 및 핵심 광물 수출 규제 유예, 미국산 대두·수수·원목 등 구매 및 미국산 농수산물 대상 관세 유예를 약속하였다.
2025 경주 APEC 계기 주요 양자 무역 협상 결과 요약
| 주요 정상 회담 |
주요 합의 사항 및 특징 |
| 한국-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 |
■ 한-일: 첨단 기술· 경제 안보· 문화 협력
■ 한-캐나다: '안보· 국방 공동 성명' 채택, 에너지· AI· 문화· 인적 교류
■ 한-싱가포르: 교역· 투자· 첨단 기술· 녹색· 디지털 해운· 원전 협력
■ 기타 국가: 다양한 분야 협력 |
| 한국-중국 |
■ 70조 원 규모(5년 만기) 원-위안 통화 스왑 체결
■ '한-중 경제 협력 공동 계획(2026~30)' MOU 체결
■ '서비스 무역 교류· 협력 강화' 등 총 6건 MOU 체결
■ 호혜적 경제 협력 강화 기반 구축 |
| 한국-미국 |
■ 대미 금융 투자 3,500억 달러(현금 2,000억 불 + 조선업 협력 1,500억 불)
■ 상호 관세 15% 유지, 자동차· 부품 관세 15%로 인하
■ 항공· 에너지· 첨단 기술· 조선 등 핵심 산업 투자 확대
■ AI· 6G· 공급망· 조선· 방산· LNG· 클라우드 등 전략 산업 협력 강화 |
| 미국-중국 |
■ '쿠알라룸푸르 협정' 이행 합의
■ 미국: 추가 상호 관세(24%) 부과 유예, 펜타닐 관세 20%→10% 인하, 입항 수수료 1년 유예, 일부 제재· 조사 유예 검토 |
IV. 평가 및 시사점
금번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무난히 치러졌으나 정상 선언문에 다자간 무역 체제 또는 무역 자유화 지지에 관한 문구가 완전히 누락된 것은 변화된 글로벌 통상 지형의 한 반영이라고 평가된다. 다자간 무역 체제가 불공정하다는 미국의 입장과 역설적으로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중국 간의 큰 입장 차이가 다시금 노정된 것이다. 물론 다자간 무역 체제를 지지한다는 문안이 합동 각료 회의(AMM) 선언문에 포함되고 정상 선언문이 각료 선언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포함되어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으나, 역설적으로 WTO 체제의 개혁이나 다자주의의 활성화를 위한 역내 입장 차이가 크고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정상회의는 대신 인공지능(AI) 발전, 인구 구조 변화(고령화·저출생) 및 공급망 재편 등 기술적∙사회적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의제에 집중했다. 보고르 선언 또는 푸트라자야 선언에서 보듯, 무역 자유화의 수량적 목표로 추구하던 APEC이 갈등을 유발하는 자유화 의제를 회피하고 덜 예민한 사회적∙기술적 변화에 따른 도전 대응과 협력으로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다자간 무역 자유화에 대한 합의가 무산된 상황에서도 역내 시장 통합을 추구하는 아태 자유 무역 협정(FTAAP)에 대한 기대를 언급한 것은 모순적이다. FTAAP는 APEC의 개방적 지역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이니셔티브긴 하지만 다자간 무역 체제의 기반 없이 역내 자유화 추진이 어렵고 광대한 아태 지역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시장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약해 보인다.
APEC 정상회의 계기에 다양한 양자 회담이 열리고 CEO와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것은 여타 APEC 정상회의와 유사한 일이었으나, 금년 경주 정상회의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 갈등에 연관된 국가 정상이 모두 참석하고 한국으로서는 신정부가 처음 치르는 정상회의로서 장기간 교착된 미국과의 관세 투자 협상의 타결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는 시기였기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미국으로서는 방한 이전에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등과 양자 협상을 타결하고 경주에서 한국과 타결함으로써 동아시아 국가들과 협상을 마무리하는 수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국제 협상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한미 간 합의가 구두로 발표되었으나 아직 서면으로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 간 반도체, 시장 개방 등과 관련 이견이 노출되고 있고, 공동 팩트 시트의 발표를 예고하면서도 시일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최종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시사한다. 양측의 합의 문안 발표 이후 실제 이행을 둘러싼 갈등과 이견이 불거질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미∙중 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신뢰 구축 차원의 상호 양보를 통해 관세 전쟁에 일시 휴전에 돌입한 바, 추후 양국 간 서면 합의의 내용과 형식에 언제 어떻게 합의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이번 APEC 정상회의 주최국으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이 계기에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과 양자 회담 및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많은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그러나 세부 사항의 내용과 영향 등에 대해서는 계속 모니터링해야 한다.
1) 최석영, "APEC '개방적 지역주의'는 실현 가능할까", (2025.11.6), 서울 신문, [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choiseokyoung/2025/11/06/20251106030001]
2) Ibid.
3) APEC, "2025 Apec Leaders’ Gyeongju Declaration", (2025.11.1). [
https://www.apec.org/meeting-papers/leaders-declarations/2025/2025-apec-leaders--gyeongju-declaration]
4) Ibid.
5) APEC, "2024 APEC Leader’s Machu Picchu Declaration", (2024.11.16). [
https://www.apec.org/meeting-papers/leaders-declarations/2024/2024-apec-leaders'-machu-picchu-declaration]
6) APEC, "Joint Ministerial Statement", 36th APEC Ministerial Meeting 2025, (2025.11.1), [
https://www.apec.org/meeting-papers/annual-ministerial-meetings/2025/2025-apec-ministerial-meeting]
7) 중앙 일보, "APEC '경주 선언' 채택했지만... 자유 무역 질서 지지 빠졌다", (2025.11.2), 기사 참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78787]
8) 외교부, "2025 APEC 정상회의 성과 및 주요 양자 회담 개최 결과", (2025.11.4). [
https://news.mofa.go.kr/enewspaper/mainview.php?mvid=3387&master=]
9) 외교부, "2025 APEC 정상회의 성과 및 주요 양자 회담 개최 결과", (2025.11.4). [
https://news.mofa.go.kr/enewspaper/mainview.php?mvid=3387&master=]
10) 대한민국 대통령실 "한미 오찬 정상회담 관련 김용범 정책실장 브리핑", (2025.10.29). [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briefing/D24K4MN6]
11) White House, " Fact Sheet: President Donald J. Trump Brings home More Billion Dollar Deals During State Visit to the Republic of Korea", (2025.10.29). [
https://www.whitehouse.gov/fact-sheets/2025/10/fact-sheet-president-donald-j-trump-brings-home-more-billion-dollar-deals-during-state-visit-to-the-republic-of-korea/]
12) 한국 무역 협회(KITA) 보도 자료, "한미, 관세 협상 팩트 시트 발표· MOU 서명 놓고 막바지 '조율'", (2025.11.4), [
https://www.kita.net/board/totalTradeNews/totalTradeNewsDetail.do;JSESSIONID_KITA=746E3A14CD82EA5046843C553F28C4C1.Hyper?no=96396&siteId=1]
13) White House, "Modifying Reciprocal Tariff Rates Consistent with the Economic and Trade Arrangemen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5.11.4) [
https://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5/11/modifying-reciprocal-tariff-rates-consistent-with-the-economic-and-trade-arrangement-between-the-united-states-and-the-peoples-republic-of-china/]
14) White House, "Modifying Duties Addressing the Synthetic Opioid Supply Chain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5.11.4). [
https://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5/11/modifying-duties-addressing-the-synthetic-opioid-supply-chain-in-the-peoples-republic-of-china/]
15) White House, "Fact Sheet: President Donald J. Trump Strikes Deal on Economic and Trade Relations with China", (2025.11.1). [
https://www.whitehouse.gov/fact-sheets/2025/11/fact-sheet-president-donald-j-trump-strikes-deal-on-economic-and-trade-relations-with-china/]